위태로운 하이힐


부산한 길가
가슴 한 가득 욕망의 덩어리를 싣고
(아! 이 누구의 욕망인가!)
지나가는 한 여인이 있다

심연의 열기를 끌어올리듯
성난 사티로스를 유혹하듯
흔들리는 덩이들 틈새로 퍼지는 육향(肉香)
이내 마음의 고향

요염한 눈짓으로 또각거리는 하이힐
저 화염을 삼켜버릴 수 있다면
뒤를 좇는 것은 나의 일
허나 이윽고 평정을 찾는 내면

위태로운 뒤축에
여인의 아름다움의 본질이 있는 것은 아닌지
욕망의 무게를 지탱할 수 없는 키르케
베일이 벗겨진 비밀이 슬픈 눈으로 호소하는 것은 아닌지

그러다 계단의 편자 아래로 뒷굽이 푹
중심을 잃은 여인은 탐스런 덩어리들을 여기저기에 떨구고 만다
내 뱃속에서 무언가가 툭
하고 덧없이 끊어진다

아! 모든 허상은 벗겨졌도다

그녀는 도망치는 페르세포네
탄탈루스의 마음은 애달파오네

 

by 안개인간 | 2009/10/08 12:21 | 몽상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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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중간자 at 2009/12/17 00:37
페르세포네와 애달파오네, 외국어 고유명사와 우리말 어휘가 이렇게나 조화롭게 병치된 건 처음 보네요. 압운에 신경쓰시는 것을 보니 주로 외국시들을 즐겨 감상하시나 봅니다.
Commented by 안개인간 at 2009/12/17 15:13
네. 영문학과 노문학을 전공으로 하다보니까 그렇게 된 것 같네요. 시 쪽엔 사실 문외한이지만 한국어만큼 압운과 거리가 먼 음운구조를 가진 언어가 없는 것 같습니다. 단어의 성수격에 따라 24가지로 어미들이 변하면서 문법구조 자체가 '압운'을 스스로 이루어버리는 러시아어하고 비교하면 더욱 그런 것 같구요.

사실 저 시는 언제나 재치있고 감각적인 뿌슈낀의 시를 읽다가 그냥 흉내나 한 번 내본 거랍니다. ^^;
Commented by 중간자 at 2009/12/17 15:39
제 경운 (꼭 따지자면)블레이크나 릴케가 (몇개 대충 읽어보면)감이 좋은 것 같긴 한데, 역시나 외국어를 거의 못하는 관계로 시는 거의 읽질 못한답니다. 소설을 좋아하긴 한데 올해에는 비문학 서적을 중심으로 독서해서 소설도 거의 안읽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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