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하나

오랜만에 학교 게시판에 들렀다. 간혹 강의정보나 학사일정 등을 확인하고자 들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가끔 같은 공기를 마주하고 사는 우리 학교 학생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사나 하는 생각에 이런저런 글들도 읽어보곤 한다.

그 중에는 신문에 투고된 에세이를 누군가가 스크랩해서 학우들과 공유하고자 한 글이 있었다. 유달리 흥미롭게 읽었던 이유는 그 글을 투고한 사람이 바둑 프로기사이자 나와 같은 나이, 같은 과의 학생이었기 때문이다. 올해 봄학기에 같은 수업을 들었던 것이 문득 생각이 났다. 여류기사로서 유명한 학생이어서 수업 때도 한 번 화제가 된 적 있는데, 그 학생이 교수님에게 직접 집필한 바둑교본을 선물하고 학생들 앞에서 자신을 소개했던 적도 있었다. 에밀리브론테와 하디 등을 다루었던 그 수업의 교수님은 인터넷의 수강학생 공유 자료실에 각기 학생들의 글을 올리고 서로 읽고 답글을 달게 해서 온라인 상에서 학생 간의 의사소통을 장려하던 분이셨는데, 수강생 중에서 유달리 내 글을 꼬박꼬박 읽어주고 그 흔적을 남기곤 했던, ‘임호씨 글의 팬이에요’라고 말할 정도로 참 변변치 못한 글을 열성적으로 읽어주던 분이 있었다. 그 분이 바로 그 프로기사였다. 이름을 잘 외우지 못하는 탓에, 그 분이 ‘그 분’이라는 것도 학기가 끝날 무렵 알게 되었다.

그 분이 신문에 투고했다는 에세이의 요지는 다음과 같았다. 수강하는 한 교양수업에서 UCC를 작성하라는 과제(흔히 말하는 ‘팀플’)를 주셨는데, 조원들과 함께 모여 동영상을 작성하기로 한 날이 바로 중요한 대국이 잡혀있는 날이었고, 어쩔 수 없이 사정을 설명했지만 유달리 수업에 열성적이었던 법대 여학생 둘에게 ‘프로기사면 다냐는 식의’ 싸늘한 말을 듣고는, 서글프게 경기에서 기권했다는 내용이었다. 굉장히 솔직하고, 담백한 어조로 쓰인 그 글은, 글쎄.. 그 행간에서 감정의 진폭이 느껴지는 점이 있었다. 그러나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우리 학교 학생들의 반응이었다. ‘그래서 이 글을 투고한 의도가 뭐래요?’, ‘프로기사든 학생이든 역량이 안 되면 하나를 그만두는 게 낫지 왜 딴 사람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그렇게 사냐’는 답글이 주류를 이루었다. ‘결말도 없고, 징징대는 찌질한 글..’이라는, 지나치게 신랄한 답글도 있었다. 처음에 달린 몇 개의 리플이 그런 어조로 이어지니, 소수의 옹호글을 제외하고는 모든 답글이 천편일률적인 비난적 어조로 가득했다. 마치 자기 자신이 ‘피해자’라도 된 것처럼.

나는 이 모든 이들이 불구자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요지가 뭐래요? 올린 의도가 뭐래요?’라는 식의, 요지 찾기에 광적으로 몰두하는 사람들. 이를테면 플롯(plot)에만 함몰한 사람들. '목표'에 눈 먼 사람들. 그들은 행간을 읽지 못한다. 단어와 단어 사이, 단어 끝에 아련하게 증발하고 있는 듯한 감정의 진동을 느끼지 못한다. 단지 요지와 의도가 자신과 부합하지 않으면, 혹은 경쟁사회의 경제논리에 ‘반’하는 사람이라면 가차 없이 ‘까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다.

검증이 끝난 고전 중에, 어떤 훌륭한 문학작품 중에도 ‘요지와 의도’ 자체가 훌륭한 작품은 없다. ‘마담 보바리’와 ‘테스’, ‘안나 까레니나’ 등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훌륭한 문학 중에는 소재로, 줄거리로 승부하는 문학은 거의 없다. 오히려 훌륭한 문학으로 남은 작품들은 줄거리와 소재의 비중을 최대한 축소하고 그 나머지의 공간에 자신의 역량을 모두 쏟은 작품들이다. ‘인간답다’라는 것은 무엇인가. 마치 문학적 인간과 경제적 인간 간의 괴리를 느낀 것처럼, 같은 학교 학생들에 대한 혐오감이 들었다.

‘별 미친 인간이 다 있네요.’라는 글에는 작성자가 미친 인간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어줍잖은 논리로 무장한 사람들은 자신이 무슨 무기를 들고 있는지도 모르고 무엇을 옹호하는지도 모르면서 부끄러운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빨간 눈으로 소리 지른다. 빠알간 자존심이 스스로 부끄러운 듯 붉게 빛난다. 참 안쓰러운 모습이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10/30/2009103001588.html

by 안개인간 | 2009/10/31 21:56 | 잡담 | 트랙백 | 덧글(0)

사계절-봄, 오렌지와 연인(1950), Robert Doisneau

Robert Doisneau : The advantage we have, compared to painters and writers, is that we never lose contact with the rough side of life. It is a lesson in humility and it keeps us from some pitfalls. But above all it nourishes us. Other people's vitality nourishes us, without their knowledge. It has done me good to work on this project in Saint-Denis, to find myself in the streets again, face to face with people. Though I must say that I found them less friendly than twenty years ago, possibly because of today's photographers, who hold their cameras like weapons - so of course the rabbit on the other side doesn't feel too good. I wouldn't dare shoot as they do, I don't have William Klein's nerve. Sometimes the camera pulls me along, but once I've got my photo I wonder, "How am I going to cope with this now, how can I explain it to these people?"

Frank Horvat : I guess that when Klein looks through his view-finder, he mainly sees shapes - while you never forget that they are real people. Except possibly in some of your photos of lovers, where their role seems to take over. To me your lovers look a bit like actors, whereas the characters in the background remain more real, I can always imagine what goes on in their minds.

Robert Doisneau : I had a few problems with the law. It appears that people have rights about their own image, and this often prevents me from catching their spontaneity. So I must stop them and say, "I noticed you while passing by, would you mind kissing again?" That's what happened with the "Hôtel de Ville lovers", they re-enacted their kiss. Those with the grocer were a couple I hired.


* 인터뷰 전문을 읽고 싶은 분과 출처 명시를 위해 아래에 주소를 첨부합니다.
http://www.horvatland.com/pages/entrevues/02-doisneau-en_fr.htm

by 안개인간 | 2009/10/25 10:01 | 그림들 | 트랙백 | 덧글(2)

개똥철학


모든 고통이 행복의 필요불가결한 조건이듯이(이의 역은 성립한다)
모든 혼란스러운 것들은 어떤 미감美感을 항상 수반한다.(이의 역도 마찬가지다)
삶이 아름다운 이유이다.

삶이 진부하고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진다면
- as Childe Harold who is the most representative byronic hero -
그것 또한 삶이 아름다운, 무수히 많은 이유들 중에 하나이다.


by 안개인간 | 2009/10/12 17:29 | 잡담 | 트랙백 | 덧글(0)

위태로운 하이힐


부산한 길가
가슴 한 가득 욕망의 덩어리를 싣고
(아! 이 누구의 욕망인가!)
지나가는 한 여인이 있다

심연의 열기를 끌어올리듯
성난 사티로스를 유혹하듯
흔들리는 덩이들 틈새로 퍼지는 육향(肉香)
이내 마음의 고향

요염한 눈짓으로 또각거리는 하이힐
저 화염을 삼켜버릴 수 있다면
뒤를 좇는 것은 나의 일
허나 이윽고 평정을 찾는 내면

위태로운 뒤축에
여인의 아름다움의 본질이 있는 것은 아닌지
욕망의 무게를 지탱할 수 없는 키르케
베일이 벗겨진 비밀이 슬픈 눈으로 호소하는 것은 아닌지

그러다 계단의 편자 아래로 뒷굽이 푹
중심을 잃은 여인은 탐스런 덩어리들을 여기저기에 떨구고 만다
내 뱃속에서 무언가가 툭
하고 덧없이 끊어진다

아! 모든 허상은 벗겨졌도다

그녀는 도망치는 페르세포네
탄탈루스의 마음은 애달파오네

 

by 안개인간 | 2009/10/08 12:21 | 몽상 | 트랙백 | 덧글(0)

문학을 공부하면서


정말로 훌륭한 문학은 표피적 감각을 자극하는 데에 만족해서는 안된다. 모름지기 탁월한 작품은 읽는 사람의 감각의 영역을 관통해내어 이성의 분자들을 격렬한 진폭으로 진동시켜야 한다. 역설적이게도 그것은 철학자의 몫이 아니라, 병적인 불안 속에서 허덕이는 작가의 몫이다. 따라서 작가의 불안은 단순히 감정의 영역에 자리하는 것이 아니다. 권위에 호소하는 뻔뻔함을 감수하자면, 그것은 똘스또이도, 카프카도, 까뮈도 서술의 역점으로 삼았던 바다. 

by 안개인간 | 2009/09/23 19:58 | 잡담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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